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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에 대하여

바이올린의 기원과 역사(제작가)

by 안젤라 9711 2023. 10. 24.

바이올린은 현대 음악의 중요한 악기중 하나로, 그 아름다운 음악과 역사적인 유산은 음악 애호가들에게 끊임없는 매력을 제공합니다. 바이올린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바이올린의 기원 

 바이올린은 어디서 왔을까요? 바이올린의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다양한 문화에서 발전해 왔으며 ,이를 통해 바이올린의 기원들 추적할 수 있다.

1.바이올라 데이 갱스(Viola da Gama) : 바이올린의 역사는 이 악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5세기와 16세기에 인기를 끈 바이올라 데이 갱스)(Viola da Gama)는 목과 줄로 만들어진 악기로, 바이올린과 비슷한 형태와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이올라 데이 갱스의 등장은 바이올린의 조상으로 간주 된다.

2.레브카(Rebec): 중세 유럽에서 사용되던 작은 현악기로, 바이올린의 예초로 여겨집니다.레브카는 (Rebec)곡면과 아치 모양의 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의 바이올린과 비슷한 형태와 크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2개 혹은 3개의 현으로 된 작은 배(pear)모양으로 생겼다.

3.피들: 1400년대의 5개 혹은 그 이상의 현으로 된 알토 음역의 중세 악기의 하나 이다.

2.바이올린의 역사

위에서 언급한 악기들은 모두 바이올린의 기원이라 여겨지고 있지만 이들 악기는 브릿지가 없거나 혹은 브릭지의 모양이 평평하다는 점에서 현을 활고 그어 연주하지 않고 듣어서 연주 했을 가능성이 있다. 활고 소리를 냈다고 해도 하나의 음을 지속해서 연주할 쭌 줄을 바꾸어 소리내는 섬세한 연주는 불가능 했을 거라 생각되고 있다.

왜냐 하면 브릿지의 각도에 따라 현의 위치가 달라지므로 평평한 브릿지로는 여러 현을 자유롭게 연주하며 다양한 음고의 섬율을 만들어 내기 어렵기 때문 이다 이후 1400년대 후반에 아치 모양의 브릿지가 사용 되면서 비로소 선율 연주가 가능 했을 것으로 추축되며, 그 후 바이올린은 활로 현을 그어 소리내는 찰현 악기로 발전 했다.

3.바이올린과 유사한 악기 비올(Viol)

바이올린과 유사산 악기로 비올(viol)을 꼽을 수 있는데, 외형분만 아니라 바이올린과 명칭도 유사한 비올은 바이올린보다 크기가 더욱 크다는 특징을 보인다. 명칭도 바이올린과 유사한 비올(viol)은 바이올린보다 크기가 더욱 크다는 특징을 보인다. 부드럽고 음향이 풍부하지만 활의 사용에 있어 표현력은 다소 부족한 비올(vliol)은 진지한 느낌의 대위적인 음악과 성악을 반주하는데 적합했다고 한다. 반면, 활력이 느껴지는 바이올린은 1500년 이후 새롭게 작곡된 다성부 춤 음악에 이상적인 악기로 받아들여 졌다. 또한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비올(viol)은 비올이라는 명칭에 (당시에는 viola라 칭했다) "다 브라치오(da vraccil - 팔에, on the arm)" 또는 "다 감바, da gamba(다리에, on teh leg)" 라는 말을 뒤에 붙임으로써 바이올린과 구분되어 사용 되었다.

4. 바이올린의 발전

바이올린은 1490년경 같은 모양의 악기가 여러 크기로 제작되는 콘소트(consort)형태로  발전 된다. 악기의 크기에 따라 공명통의 성질과 현의 길이, 굵기,무게 등이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 음역대의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이로써 여러 성부로 된 다성음악(polyphony)을 현악기로 연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콘소트는 일찍이 14세기에 숌(shawn),플루트, 리코더와 같은 관악기에서 발전되기 사작된 걱으로, 피들에도 콘소트 개념이 적용되면서 바이올린 족(violin family)이 만들어지게 된다

5.바이올린 제작가

17세기가 시작되면서 바이올른은 솔로 악기로 발전하기 시작하며 이탈리아의' 브레시아'와 '크레모나'가 바이올린 제조의 명가로 우위를 접하고 있었다 브레시아에는 제조가 가스파로 다살로(Gasparo da Salo) 와 지오 파올로 마지니(Gio Paola Maggini)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16세기 초부터 명성을 얻고 있었다 .크레모나가 처음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제조가 안드레아 아마티와 그의 자손들 덕분으로.안드레아 아마티의 아들 안토니오 아마티와 지롤라모 아마티는 '아마티 형제'로 일하며 최고의 악기를 만든다 이러한 아마티 가문의 바이올린은 '지롤라모'의 아들 '니콜로 아마티'에 의해 정점에 이르게 된다. 1630년 이후 아마티 가문의 제작비법은 가족이 아닌 제자들에게도 전수되기 사작해 아마티에게 비법을 전수 받은 대표적인 제조가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와 안드레아 과르네리로 스트라디바리는 바이올린 역사에 있어 최고의 악기를 남긴 전설적인 명장이다. 과르네리 역시 현악기로 가문의 명성을 높인 제조가로, 그의 손자 주제페 과느네리'델 제수'는 과르네리가문에서 가장 뛰어난 명장이 되어 그 후로 200년 동안 스트라디바리와 더불어 가장 위대한 명장으로 꼽히고 있다.

- 과르네리라는 이름 뒤에 '델 제수(del Gesu)가 붙는 것은 그의 바이올린 라벨에 성인문자(I.H.S. iota - eta - sigma) 와 십자가 문양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델 제수'는 '예수님의' 라는 똣으로 과르네리 가문의 다근 명장과 구붖하기 위헤 '델 제수'라는 말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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