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티와 스트라디 바리우스, 그리고 과르네리 이후의 바이올린 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1.17세기 후반 이후의 바이올린 역사
오늘날의 바이올린 형태가 나오기 시작한것은 치롤 지방의 압잠에서 활동 했던 니콜로 아마티의 문하에서 제작을 배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슈타이너에 의해서 제작 되었다. 그렇게 추정 하는 이유는 아마티가의 모든 바이올린 중에서 니콜라의 바이올린은 종종 현대 연주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그의 악기는 아버지의 개념을 밀접하게 따랐으며 상대적으로 작은 모형과 악기 앞과 뒤의 중앙에 능선까지 올라가는 높은 아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17세기 후반과 18세기에는 브레시아와 크레모나 이외의 다른 이탈리아 지역에서도 뛰어난 바이올린 제작가가 활동했다.
또한 17세기 이탈리아 출신이 아닌 제작가로는 오스트리아의 제작가 야콤 슈타이너 의 바이올린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독일의 미텐발트(Mittenwald)와 미르꾸르(Mirecourt)또한 17세기 바이올린 제작의 중심지로 잘 알려져 있었다.미르꾸르 지역에서 제작법을 배운 제작가들은 파리로 이주해 19세기 초 파리는 바이올린 제작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2.18세기 후반의 바이올린 역사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을 18세기 후반에만 해도 오늘 날처럼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1785년 판 백과사전 (Encyclopedie Methodique)에 는 '야콤 슈타이너는 아미티를 잇는 위대한 명장이다.요즘 스트라디바리는 좋은 바이올린을 상당히 많이 만들고 있는 숙련된 제작가이다.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은 남정적이며 파워풀하고 듣기 좋은 톤을 지니고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그러나 18세기 말부터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한다.1780년대에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 조반니 바티스타 비오티(Giovanni Battista Viotti)가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과 과르네리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하면서 이 두악기가 아카티와 슈타이너의 악기보다 뛰어나다는 인식이 셩겨난 것이다. 비오티가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의 악기를 인정한 이후로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은 지금까지도 그 자체로 완벽한 ,최그의 가치를 지닌 악기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3.바이올린의 발전
18세기 후반까지도 바이올린을 잡는 자세는 아직 정형화 되지않았다. 그것은 오늘날의 자세와는 상당히 다른것 이었는데 바로크 초기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바이올린을 가슴에 대고 스크롤 부분을 거의 허리까지 낮게 낮추어 연주 하였다.모차르트의 아버지 요한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1756년 바이올린을 잡는 두가지 자세에 대해 설명 하였는데, 바이올린을 가슴에 대고 연주하는 방법은 우아하지만 표지션 이동에 있어서 불편한 반면, 턱 아래 바이올린을 두는 방법은 편하면서도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1700년대 후반만 해도 이두가지 방법이 모두 사용 되었는데 1820년경 루이스 슈포어(Louis Spohr)의 턱 받침 발명으로 현대의 자세로 연주자세가 굳어지게 되었다. 또한 턱 받침과 더불어 어깨받침도 제작되면서 바이올린을 고정하고 연주하여 포지션 이동과 보다 빠른 연주가 가능한 악기로 발전 되었다. 그리고 18세기 중엽에는 바이올린 구조에 있어서 변화가 나타나며 바이올린이 연주회장에서 돋보이는 악기로 각광 받게 되면서 더 많은 청중을 위한 큰 음량과 화려한 음색의 악기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이러한 요구에 따라 울림기둥(Sound post)의 크기가오늘날과 같이 커졌고 저음 울림대(Bassbar0가 악기를 더욱 튼튼하게 받쳐주게 된다.또한 높은 음역을 편하게 연주하기 위해 바이올린의 목과 지판이 길어지고 ,바이올린의 목은 더욱 뒤로 젖혀진 오늘날과 같은 모양이 되었다.
4. 현재의 바이올린
1820년 이후바이올린의 몸통이 평평한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이 콘서트용 악기로 각광받은 반면 ,아치형 몸통에 작은 톤의 슈타이너 바이올린과 아마티 바이올린은 예전의 인기를 잃었다. 19세기 초에 이르자 콘서트가 많아지고 바이올린을 배우는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좀더 저렴한 악기에 대한 수요도 늘어 나게 되고, 이를 위해 공장에서 악기가 생산되기 사작 했으며 ,프랑스의 미르꾸르와 독일의 미텐발트,마르크오니키르헨을 중심으로 대랑 생산되어 합리적인 가격에 음질 좋은 바이올린이 만들어 지게 되었다.이어 영국과 미국. 이탈리아, 스위스,폴란드와 같은 나라에도 바이올린 제작학교가 설립되어 바이올린 제작은 더욱 활기를 띄게 된다.
19세기의 영항력 있는 바이올린 제작가로는 장-밥티스트 비욤(Jean-Bapteste Vuillaume)이 있다. 1827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고 1855년에 이탈리아 악기를 카피하며 '메시아(Messiah)와 같은 스트라디바리의 훌륭한 악기들을 카피 하여 대량 생산해 냈다. 이로서 오늘날 우리는 많은 악기를 싼 가격에 만날 수 있게 되었고 누구나 연주 할 수 있는 바이올린이 생산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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